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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864건 공주
1910년대 말,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서 공주시가지를 촬영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봉황산 아래 충남도청에서 동서방향으로 난 욱정거리(現 감영길)와 남북으로 흐르는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충남행정의 수부(首府)답게 충남도청과 공주지방재판소(現 공주지방법원),…
일제강점기 공산성 내 영은사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본 자료는 제2대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1921년 공주를 방문했을 당시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이다.
조선후기 충청감영시절에 건축한 외삼문과 내삼문, 선화당으로 충남도청 외삼문 밖에서 충남도지사의 근무지인 선화당을 바라본 모습이다. 선화당 중앙에 걸린 '충청남도(忠淸南道)' 현판이 온전하게 보인다. 300여년 옛 충청감영시절을 엿볼 수 있는 대문기둥의 낡은 주련…
충남도청의 정문인 포정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문루 2층의 창호지가 유리로 바뀌었으며, 문루와 연결된 담장도 기와와 돌이 조화를 이루던 전통식 담장에서 일제식 널빤지를 이용한 벽으로 바뀌었다. 이는 500007866과 비교하면 그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충남도청 선화당 북측에 있던 공주경찰서의 모습이다. 공주경찰서는 그 기능이 커지면서 1922년에 제민천 영교(營橋) 부근에 있던 우편국과 가까운 곳(現 공주역사영상관 옆)으로 이전했다. 경찰서 건물은 터를 돋아 신축했으며, 정문 양측으로 작은 게시판 2기가 세워져…
일제강점기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 위치한 초혼사의 모습이다. 초혼사는 일제를 위해 죽은 이를 위해 설치한 시설로 초혼제를 열었다. 실제로 1926년 매일신보에 따르면 10월 21일 충남의 순직경관을 위한 초혼제를 앵산공원 초혼각에서 거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11년 공주 산성정 일대의 대로에서 진행한 신무일왕 탄신기념 식목행사의 모습을 엽서로 제작한 것이다. 대로의 끝 부분에 위치한 공산성 쌍수정의 모습과 함께 당시 산성정에 위치한 석유창고의 모습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1911년 공주시내 일원에서 진행된 신무일왕 탄신기념 식목행사의 모습이다. 본 자료에서 일제 순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작업을 감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앵산공원(現 3.1중앙공원)에 1920년대 초까지 있었던 일제의 대신궁이다. 일제는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위해 곳곳의 사적지를 공원화하면서 그곳에 신사를 건립했다. 공주에서는 공산성을 산성공원이라 격하시키고, 미국 선교사가 세운 영명학교 인근을…
일제강점기 공산성 옆 일명 '벚꽃터널'의 모습이다. 이곳은 금강을 건너면 나오는 공주의 진입로로서 현재 금강교 남단에서 금서루를 지나 시가지로 들어가는 도로(現 웅진로)이다. 일제는 공산성을 공원화하며 이름을 '산성공원'으로 바꾸며 성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는데, 이때…
현재의 3.1중앙공원 유관순 동상 부근에서 내려 본 공주시가지의 풍경을 담은 파노라마엽서이다. 나무로 일부가 가려졌지만 시가지를 빼곡하게 채운 광공서와 상점, 민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충남도청 포정사와 감영길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6.25 한국전쟁으로 무너진 2층의…
현재의 공주고등학교 뒤편 옛 충령탑 부근에 위치한 정수장 배수탑의 모습이다. 공주의 상수도시설은 1923년 완공되어 동년 4월 1일부터 급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돗물을 이요하는 사람은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조선인은 5명 중 1명 정도만 집에서 식수를 공급받았다.…
기증자가 공주의 충효열 유적에 대해 조사하기 전 모아둔 기초조사자료집이다. 본 자료에는 효자 김영성의 정려와 오수혁, 각종 문헌자료의 사본이 수록되어있다.
기증자가 공주의 충효사와 덕천군 관련 유적지에 대한 기초정보조사자료를 모아놓은 파일이다.
일제강점기 조치원에서 공주를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나루터로, 조선시대부터 전라도에서 한양가는 삼남대로 길목에 있는 장기대나루 북단이다. 장기대나루는 옥룡동에서 금강을 건너 시목동(감나무골)로 연결되었던 나루로 장기진(杖基津)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죄인의 목을 장대에…
일제강점기 공산성 쌍수정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사진그림엽서이다. 쌍수정의 윗편에 공산성과 쌍수정에 대한 설명이 쓰여있다. 설명에 의하면 '쌍수정은 조선개국 233(1625)년 인조가 한양의 난리(이괄의 난)를 피해 와서 난이 진압된 후, 왕이 머물던 것을 기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