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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말경, 봉황산 아래 위치한 충남도청 중심의 공주 시가지 모습이다. 엽서에는 당대의 인물이 작성한 수비대와 도청, 법원, 이름난 요정 등 주요명소와 함께 '앵산공원에서 공주를 바라보며'라는 친필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공주우편국에서 사용한 인지의 한 종류로 공주의 풍경을 배경으로 제작된 두 종류의 풍경인 중 전기버전이다. 풍경인 내에는 충혼비와 금강, 배다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공주군 우성면 단지리에서 출생하고 동면 동대리로 주소를 이전한 김상진의 호적등본이다. 전(前) 호주로 김상진의 아버지인 김칠봉(金七奉)이 기재되어있고, 어머니 김단연(金丹然), 처(妻) 이창분(李昌分), 자녀들 그리고 손자들까지 등록되어있다. 해당 인물들의 출생연도와…
1916년에 공주군 장기면(長技面) 도계리(道溪里)에 사는 최희찬(崔喜燦)이 자신의 선조인 최중경(崔仲慶)의 분묘를 조성하고자 관부에 신고한 묘적계 문서이다. 제출서는 공주경찰서장 경부 장사정태(庄司政太)이다. 문서에는 최중경의 사망연월일과 제주의 주소, 성명이…
1946년 공주읍에서 발행한 수도세에 대한 납세영수증이다. 문서번호는 제110호, 수취인은 최선영(崔善英)이다. 표에 기재된 내용을 통해 2월분의 수도세에 대한 고지서 이며 납부액은 20원임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발행날짜는 알 수 없지만, 발행인은 공주읍사무소의…
1946년 3월 10일 공주읍사무소에서 발행한 수도세 납세고지서이다. 문서번호는 제110호, 수취인은 최선영(崔善英)이다. 표에 기재된 내용을 통해 2월분의 수도세에 대한 고지서 이며 금액은 20원임을 알 수 있다. 납부기한은 1946년 3월 15일까지이며 공주읍장…
일제강점기 공주지방법원에서 발행한 민사소송 개정에 대한 유의사항 안내문이다.
일제강점기 공주우편국에서 사용한 인지의 한 종류로 공주의 풍경을 배경으로 제작된 두 종류의 풍경인 중 후기버전이다.
광복루는 본래 공산성 북쪽 공북루 부근에 있던 조선후기 충청병영인 중군영의 문루로 그 이름은 '해상루(海桑樓)'였다. 중군영이 폐지되며 여러 건물이 해체 및 이건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제1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에 의해 이름도 '웅심각(雄心閣)'이라…
새마을운동 당시 사곡면 화월 1리 마을 내 회의록이다.
공주교대부속 국민학교 시절을 배경으로 제작된 엽서이다.
1920년대 초반 제민천 하류에 있던 버드나무 군락지의 모습이다. 멀리 유교(柳橋)가 보이는데, 현 중동 큰 사거리와 연결된 교촌교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현재의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과 배다리의 모습이다. 멀리 쌍신동의 정안천 제방과 연미산 능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교가 가설된 1920년부터 금강교가 가설되기 전인 1933년 이전의 모습으로 보인다.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는 백제 웅진도읍기 산성이 축조되었을 때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루이다. 일제강점기 공산성은 식민지정책에 따라 사적지를 공원화 하여 '산성공원'이라 불리었다. 본 자료는 500007853과 유사한 자료로 보인다.
1920년대 초반 제민천 하류에 있던 버드나무 군락지의 모습이다. 멀리 유교(柳橋)가 보이는데, 현 중동 큰 사거리와 연결된 교촌교로 추정된다.
공주군 탄천면에 거주하는 인물이 발행한 차용증서이다.
공주시 금흥동 지역의 개발 이전에 건설부에서 국토 개발을 위해 발행한 지적도의 일부로 추정된다.
공주 장기면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기양조장의 태그이다.
고마나루 명승길(고마나루)⑫ 공주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라면 이곳에 대한 추억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4차선 도로가 진입로를 끊어버리면서 접근이 살짝 불편해졌다. 특히 차 없이 걷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