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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자(배관수)가 군 복무 찍은 단체사진으로 중앙에 교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npda_1945_12_27_x005F0220
1984년 배양환님이 군복무 중 촬영한 전우와의 기념사진이다.
https://nl.go.kr/newspaper/detail.do?content_id=CNTS-00093883640&from=%EC%8B%A0%EB%AC%B8%20%EA%B2%80%EC%83%89
https://nl.go.kr/newspaper/detail.do?content_id=CNTS-00093883625&from=%EC%8B%A0%EB%AC%B8%20%EA%B2%80%EC%83%89
https://nl.go.kr/newspaper/detail.do?content_id=CNTS-00093835165&from=%EC%8B%A0%EB%AC%B8%20%EA%B2%80%EC%83%89
https://www.nl.go.kr/newspaper/detail.do?content_id=CNTS-00093748480&from=%EC%8B%A0%EB%AC%B8%20%EA%B2%80%EC%83%89
1974년 공주사대 졸업앨범에 수록된 운동장에서의 기념사진이다. 운동장의 상태가 고르지 못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계룡산 밑 신원사 가는 길 옆 양화리의 한 민가에서 보목 김보살이 굿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통돼지와 소머리 등의 제물이 올려질 만큼 큰 굿이다.
계룡산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보목 거주 김보살과 남편이 식사하는 장면이다. 김보살은 매우 영험한 무속인 중 하나로 꿈에 신(할아버지)의 계시를 받아 타지에서 계룡산으로 이주한 무속인이다. 약 10여 년 전 타계하셨다.
2000년대 초까지 계룡산 곳곳에는 무속인이 산제당을 설치해 놓고 있었다. 현재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무분별한 무속행위를 단속하여 사진과 같은 산제당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계룡산 고왕암에는 최근 큰 바위에 미륵마애불을 새로 새겼다. 본 사진은 주민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무속에는 불교의 미륵신앙이 합성된 성향을 보인다. 사진 속 굿당도 머리에 갓을 쓴 미륵불을 모신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굿은 '미신'으로 천시받았다. 그럼에도 수 천 년을 이어온 민간신앙은 음지에서 이어졌다. 1975년과 1983년 두 차례의 계룡산 미신타파 정화작업으로 주춤하기도 했으나 전통문화의 활성화가 무속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1990년대 중반 계룡산 주변에는 이름없는…
우리나라에서 굿은 '미신'으로 천시받았다. 그럼에도 수 천 년을 이어온 민간신앙은 음지에서 이어졌다. 1975년과 1983년 두 차례의 계룡산 미신타파 정화작업으로 주춤하기도 했으나 전통문화의 활성화가 무속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1990년대 중반 계룡산 주변에는 이름없는…
삼태동 굿당의 오방천과 대수대명이다. 대수대명에 몸이 아픈 사람의 이름을 적은 후 삼베천으로 싸서 오방천과 함께 나무에 매달아 놓으면 환자의 병이 나아 장수한다고 믿는 뜻을 지녔다.
계룡산의 굿당 한켠에 모셔진 산신령의 모습이다.
계룡산 양화리와 하대리 등에는 수많은 굿당이 밀집해있다. 1975년과 1982년 두 차례의 정비작업으로 많은 수의 신흥종교 집단이 퇴출되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 계룡산에는 서서히 상업적 성격의 굿당이 들어서 한 집 건너 굿당이 들어서 성업 중이다.
굿당에는 오방색의 천을 두른 모습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밀접한 것으로 우리 선조들은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색과 동물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굿을 시작하기 전 다섯 방위의 신들에게 굿을 진행하니 잘 받아달라는 뜻으로 오방신에게 신고하는 의미를…
굿당은 대체로 큰 바위를 뒤에 두고 짓는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암각수를 용수라고 칭하며, 그곳을 용궁으로 일컫는다. 본 사진은 계룡산 양화리 계룡정사 용궁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