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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07건 성안마을
목차
1. 충청의 首府 公州(공주)
1) 감영도시, 공주의 옛모습 - 18, 9세기 공주의 관청시설과 인구규모 = 27
2) 공주에 밀려든 '開化 물결' - 개화기·한말 공주의 도시발달 = 41
3) 우금티 마루에 흐르던 통곡소리 - 우금티 東學農民戰爭의 역사적 의미…
목차
1. 충청의 首府 公州(공주)
1) 감영도시, 공주의 옛모습 - 18, 9세기 공주의 관청시설과 인구규모 = 27
2) 공주에 밀려든 '開化 물결' - 개화기·한말 공주의 도시발달 = 41
3) 우금티 마루에 흐르던 통곡소리 - 우금티 東學農民戰爭의 역사적 의미…
백제가 한성에서 금강으로 천도한것은 지리적인 요건으로 차령산맥과 금강이 자리하고 있어 방어가 쉬었기 때문. 정치적으로는 용원리세력과 수촌리 세력이 고구려군을 막아줌.경제적으로는 강을 통해 세금을 걷을 수 있기때문. 이러한 조건으로 공산성은 장기한전에 중요한 요새
보수 후의 원통전 여름 전경. 원통전과 어울리게 핀 백일홍이 아름답다.
보수 후의 원통전 모습. 말끔하게 단장했으나, 고즈넉한 모습은 사라졌다.
원통전의 설경. 보수 후의 모습이다. 지붕도 단장하고 ‘원통전’편판, 창문 등도 모두 새롭게 보수했다. 계단 옆 2개의 등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초가을 아침, 공산성 운동하는 길에 영은사 앞을 지나면서 예를 올리는 모습에서 깊은 불심을 읽을 수 있다.
1992년의 영은사 원통전. 보수하기 전의 모습이다. 영은사는 현존하는 공산성 내의 사찰이다.
1992년의 영은사 원통전. 보수하기 전의 모습이다. 영은사는 현존하는 공산성 내의 사찰이다.
1992년의 영은사 원통전. 보수하기 전의 모습이다. 영은사는 현존하는 공산성 내의 사찰이다.
진남루 앞 성황당. 정리된 모습이며, 돌로 쌓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때문인지 나무를 벤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성동에서 진남루로 오르는 길 옆에는 점을 보는 무속인의 집이 있었다. 지금은 성황당도 헐리고 무속집도 없어졌다.
공산성 진남루 앞에 언제부터인지 돌로 쌓은 성황당이 있었다. 한 무속인이 정성을 들이는 장면.
공산성 마을 주변에서 고구마를 경작하고 이를 수확하는 주민. 고구마 경작이 불법이라며 얼굴을 찍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산성마을의 한 부부가 장작을 패는 모습이다. 잘려진 나무를 도끼로 내려치는 남편에게 급하게 뭐라고 지시하는 아내의 표정과 달리 남편은 여유로운 표정이다.
마을 일부는 헐렸는데 아직 이주하지 못한 주민과 아이들의 모습이 그림자로 길게 남았다.
마을 일부는 헐렸는데 아직 이주하지 못한 주민과 아이들의 모습이 그림자로 길게 남았다.
아직 떠나지 못한 집의 아이들이다. 앞의 공터에는 집을 헐은 흔적이 보인다.
벽시계가 4시 2분 전을 가리키고 ‘58 성안마을길’ 표시판이 공허하다.
마을을 떠난 빈 집에 주인없는 봉숭아꽃이 속절없이 예쁘게 피었다. 손톱에 물들일 아이들도 없는데
한여름 오후, 이창곤씨 등 너머로 햇살이 비추이고 길게 내려 앉은 그림자가 곧 마을을 떠나야할 이창곤씨의 시름을 대신하고 있는 듯.